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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 차이와 반복

차이와 반복
출판사 : 민음사
출판년도 : 2004.03.20
지은이 : 질 들뢰즈
ISBN : 8937416131
책 쪽수 : 708 page
정가 : 30,000 원
 


원래 들뢰즈의 국가박사 학위 청구 논문이었던 <차이와 반복>은 처음 출간될 무렵부터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푸코를 비롯한 당대의 평자들은 이 저서를 사상사의 새로운 국면을 예고하는 획기적인 작품으로, "비바람을 동반한 폭풍우"라고 평가했다. 이런 평가는 동료에게 보내는 주례사도, 출판사를 위한 상업적 포장도 아니었다. 그것은 이 책을 꼼꼼히 읽어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수긍할 만한 감탄사일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희귀한 재능과 열정, 초인적인 훈련과 시적 영감이 어우러진 참신한 감각의 철학적 기획을 읽을 수 있다. 이 책에서 들뢰즈는 헤겔과 덩치를 겨루고 하이데거보다 멀리 이르고자 하며 니체의 반플라톤주의적 전회를 완성하고자 한다. 그렇게 완성된 기획은 데리다의 해체론적 차이의 철학과 대조할 만한 구축론적 차이의 철학을 이루고, 그 구축의 규모와 정교함은 화이트헤드의 과정 철학을 족히 넘본다. 이 작품을 통해 구현된 철학자 들뢰즈의 모습은 철학적 전통 전체의 산맥과 형세를 뒤바꿔놓는 거인, 당대의 학문과 예술을 망라하는 종합적 체계의 설계자, 최고의 지혜를 꿈꾸는 비전적 전통의 계승자이다. 그런 의미에서 들뢰즈 철학의 등장은 고전적 형이상학의 부활에 해당한다.
이는 이른바 '독단적' 형이상학에 대한 칸트적 해체론 이후 협소한 인식론에 몰두해온 서양 철학의 주류에서 볼 때는, 심지어 데리다적 해체론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어떤 퇴보이자 예외로 비칠 수 있다. 하지만 들뢰즈는 해체론적 전통이 도달한 일정한 지점에서 새로운 높이의 형이상학을 펼쳐내고, 이를 '초월론적 경험론'이라 명명했다. 이 경험론은 한편으로는 이제까지 감춰져온 철학사의 보고들을 들추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수학자와 자연과학자들과 대화하면서, 또한 화가, 소설가, 시인들을 인용하면서 자신의 범위를 넓혀간다. 이는 단순한 지적 과시도, 산발적이고 우연한 연상도 아니다. 형이상학은 세계의 밑그림을 그린다는 점에서, 또 세계를 해석하는 가장 초보적인 도식이나 코드를 창조한다는 점에서 과학이나 예술과 다르지 않다. 다만 형이상학자는 합리적 언어에 기대어 세계의 총체적 그림을 그리는 종합자일 뿐이고, 그가 합리적 언어를 초월하는 차원으로 발을 들여놓을 때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초월론적 경험론은 이 책에서 어떤 구도로 펼쳐지고 있는가? 어떤 도식을 끌어들일 때 그 복잡한 내용을 가장 경제적이고 효과적으로 집약할 수 있을까? 서양 철학사에 익숙한 독자라면 칸트의 초월론을 들뢰즈의 철학으로 가는 징검다리로 삼을 수 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순수이성비판>은 감각을 다루는 감성론, 개념적 판단을 다루는 분석론, 초월적 이념의 세계를 다루는 변증론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차이와 반복>도 마찬가지다. 이 책에서 들뢰즈는 개념적 매개와 재현의 빈곤성을 고발하는 해체론적 분석론(1장)을 선보이고, 감각적 경험과 심미적 경험을 일거에 통합하는 새로운 감성론(5장)을 통해 칸트의 감성론을 극복하고 있다. 또 이념의 세계가 감성적 사태와 개념적 사태의 실질적 발생 원천임을 말하는 새로운 변증론(4장)을 통해 칸트의 변증론은 물론이고 헤겔의 변증법과도 확연히 구별되는 길을 걷고 있다. 게다가 이런 새로운 분석론, 감성론, 변증론은 포괄적이고도 견고하게 짜여가는 새로운 시간론과 맞물리면서 근대적 전통의 토대 개념을 해체하는 현대적 토대론(2장) 안에서 종합되고, 나아가 근대적 사유 개념을 대체하는 특이한 인식론(3장) 안에서 다시 반복되고 있다. 이런 감성론, 분석론, 변증론, 토대론, 인식론 등을 세부로 거느리는 들뢰즈의 존재론은 이념적 세계를 개념적 세계 위에 두는 것이 아니라 감성적 세계 속에 둔다. 개념적 세계의 저편은 감성적 차원 안에 내재하고, 따라서 감성적인 것은 이미 개념적인 것보다 우월한 셈이다. 비전적 전통의 계승자 들뢰즈에게서 감성적이거나 물질적인 것은 이미 정신적이고, 처음부터 이상적인 요소를 머금고 있다. 물질은 이미 물질 이상의 물질, 정신적인 물질, 개념 이상의 물질이다. 이념적 함량 운동과 이어져 있는 감성이나 물질을 들뢰즈는 강도(强度, intensite)라 부르는데, 초월론적 경험론은 이런 강도의 세계에 대한 탐구라 할 수 있다. 칸트와 니체는 물론이고 심지어 베르그손마저도 강도적인 것을 질적인 것과 동일시하고 있다. 그러나 들뢰즈적 의미의 강도는 질과 양의 이항대립에 선행하는 초월론적 사태이자 자신이 낳은 질과 양들 밑으로 숨어들어가는 초월적 사태이다. 강도는 현실적 대상의 경험에 선행할 뿐 아니라 그 경험과 대상의생성 자체를 가능하게 해주는 조건이라는 의미에서 초월론적이고, 재현적 사유와 개념적 매개를 깨뜨리는 힘을 지닌다는 의미에서 초월적이다. 강도는 결코 차분하게 거리를 두고 재현할 수 없는 어떤 불가능한 사태이고, 이 불가능한 사태는 사유 주체를 역설감과 지극한 수동성에 빠뜨리는 어떤 마주침의 대상이다.
들뢰즈가 자신의 철학을 초월론적 경험론이라 부른 이유는 여기서 분명히 드러난다. 그것은 결국 초월적이자 초월론적 지위에 있는 이 강도적 사태를 염두에 둔 명칭이다. 철학이 강도적 사태에 궁극의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것은, 강도적 사태가 존재자의 직접적 발생 원인이자 사유와 인식의 참된 조건이기 때문이다. 이 점을 생각한다면 들뢰즈의 철학에서 강도론이 차지하는 비중을 족히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들뢰즈가 '즉자적 차이', '차이 그 자체'라 부르는 것은 개념 안에 정돈된 차이도, 개념으로 묶이지 않는 잡다성도, 이념 안에서 꿈틀대는 부차모순이나 미분적 차이도 아니다. 그것은 개념적 차이도 이념적 차이도 아닌 강도적 차이일 뿐이다. 이 강도적 차이가 이 책에서 말하는 '순수한 차이'고, 들뢰즈의 반복 이론도 이 순수한 차이(발산과 탈중심화)에 상응하는 반복(전치와 위장)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들뢰즈의 존재론은 물론이고 이와 함께 가는 차이론, 반복론, 인식론, 토대론, 시간론, 주체론, 교육론 등도 강도론의 주위를 맴돈다. 들뢰즈의 인식론과 토대론을 형성하는 용어들도 모두 강도적 종합의 영역을 배경으로 하며, 이 책 2장에서 토대론과 함께 펼쳐지는 시간론과 수동적 종합 이론 전체도 강도적 종합의 영역을 지반으로 하고 있다. 들뢰즈는 자신의 철학을 긍정의 철학이라고 말하길 즐겼다. 그 긍정은 강도적 차이가 일으키는 종합을 일컫는다. 칸트 식의 이념적 종합이 문제틀을 정립한다는 의미에서 실증적이라면, 강도적 종합은 그런 문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해결을 모색한다는 의미에서 긍정적이다. 긍정이란 정확히 강도적 차이소들 사이에 일어나는 '공명'의 사태인 것이다.
이 작품이 어떤 체계를 이루고 있다면, 그것은 분명 들뢰즈적 의미의 강도적 체계이다. 하지만 관점을 달리한다면 이 책은 인체의 모습을 띠고 있기도 하다. 가령 서론(「반복과 차이」)은 머리이고, 1장(「차이 그 자체」)과 2장(「대자적 반복」)은 두 팔이다. 또 3장(「사유의 이미지」)은 가슴에, 4장(「차이의 이념적 종합」)과 5장(「감성적인 것의 비대칭적 종합」)은 배에, 결론(「차이와 반복」)은 두 다리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 책의 앞부분이나 뒷부분만을 읽는다면 들뢰즈 철학의 외양은 어느 정도 식별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내장을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전체에 대한 숙독과 이해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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