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사
발간사
서론: 이 증언집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일러두기: 구술기호와 편집기호
김화선 1926년 평양에서 출생 1941년 (16세) 위안부로 연행되어 싱가포르로 감 1945∼46년(20-21세) 해방되었으나 바로 귀국하지 못하고 중국 산둥, 변강성 등지에서 생활 1947년 (22세) 귀국하여 부산 수용소에 있다가 인천, 서울 등지에서 생활 평양 귀향을 시도했으나 실패 1950년(25세) 부산, 대구, 인천, 서울 등지에서 피난살이 1966년 경(41세) 충청남도 조치원에 정착 1980년 경(55세) 충청남도 연기군으로 이주 - 우리가 보고 듣고 이해한 김화선
김창연(가명) 1925년 부산에서 출생 연도미상 의붓아버지가 유모로 팜 1940년 경(16세) 위안부로 다시 팔림 일본 시모노세키에서 남양군도로 감 1945∼7년(21세∼23세) 해방되어 진주로 돌아옴 평안남도 강서군 고모집에서 결혼 1948년 경(24세) 부산으로 남하 1949년 경 (25세) 이혼 6개월 후 첫째 아이(아들)출산 1952년 경(25세) 아들을 전 남편이 데려감 1957년 (33세) 두 번째 결혼 1958년(34세) 이혼 둘째 아이(딸) 출산 1997년(73세) 위안부 등록 2000년 현재(77세) 부산 기장에서 혼자 살고 있음 - 우리가 보고 듣고 이해한 김창연
한옥선 1919년 11월 13일 충청남도 조치원에서 출생 1926년(7세) 인천으로 이사 1937년 (18세) 서울 직업소개소에 속아서 감 1938년 4월(19세) 위안부로 연행. 중국 길림성 경유-태원-오수이징 1914년(23세) 하가쇼이 군의장교와 만남 1942년(24세) 하가쇼이와의 사이에서 첫째 딸 하가 출산 1943년(25세) 하가쇼이와 이 사이에서 둘째 딸 순자 출산 1945년(27세) 해방 직전 하가쇼이 군의장교 전사 추정 1946년 4월(28세) 둘째 딸과 한국 입국 1946∼7년(28-9세) 민씨와의 사이에서 첫째 아이 출산. 3개월만에 사망 1951년(33세) 1. 4 후퇴시 민씨와의 둘째 아이 사망 1983년 (65세) 민씨 사망. 그 직후 위안부로 등록 2000년 현재(82세) 부평의 둘째 딸의 집에서 투병중 - 우리가 보고 듣고 이해한 한옥선
김영자 1923년 겨울 전라북도 전주에서 출생 2녀 3남 중 첫째 딸 1938년(16세) 영등포 광목공장에 취업. 두 달 후 고향 전주로 내려옴 1938년(16세) 위안부로 연행, 만주 동령 연도 미상 위안부 시절 아이 출산, 이후 사망 1946년 봄 (24세) 고향 전주로 돌아옴 1947년 경(25세) 서울로 올라옴 1950년(28세) 미아리, 동두천 등지에서 장사 연도 미상 어머니 사망 1960년 경(38세)충청북도 영동에서 살림을 차림 농사짓고 삼 1984년(62세) 동거하던 할아버지 사망 2000년 현재(78세) 영동에서 손자와 살고 있음 - 우리가 보고 듣고 이해한 김영자
최갑순 1919년 음력 1월 23일 전라남도 구례에서 출생 4녀 2남중 첫째 1933년(15세) 집에서 위안부로 연행 중국 동안성 1945년(27세) 해방과 함께 장사를 하며 남하 시작 1948년 경 (30세) 고향 구례로 돌아와서 농사 짓고 삼 1950년 32세) 양아들 들임 1960년(42세) 허씨와 결혼 1960년 후반 추정 서울로 식모살이 옴 남편이 서울로 이주 1989년(71세) 남편 사망 2000년 현재 (82세) 성북동에서 양아들과 함께 살고 있음 - 우리가 보고 듣고 이해한 최갑순
(이하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