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제국주의의 식민 지배와 독재정권의 그늘, 분단의 논리로 인해 고통을 겪어야 했지만, 지금은 그런 사실을 때론 영광스러운 추억으로 때론 낯선 경험 정도로 기억하고 있는 듯하다. 지금, 우리는 거대한 지각장애와 기억상실에 빠져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우리사회의 집단적 장애는 우리에게 ‘담론 권력 집단’의 기획과 음모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이 책은 보고 있다. 담론 권력집단이 의도적으로 전향자의 ‘고백’과 학문적 권위, 과거의 향수와 종교적 권능을 이용해 우리의 의식을 갉아 먹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하여 지금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의 기본이라 할 ‘다름’의 인정을 거부한 채, 그 ‘다름’에 색깔을 칠하고 경멸하기에 이르렀으며, 새로운 것과 낡은 것, 선과 악, 가치와 무가치, 이성과 비이성의 구별조차 힘들게 된 상황에 처해 있다고 분석한다. .
저자는 이 책에서 에드워드 사이드가 ‘오리엔탈리즘’의 글쓰기에서 원용한 미셸 푸코의 ‘언설’이라는 개념에 의존해 우리 사회에서 지배적 담론 권력을 발휘하고 있는 이른바 ‘미디어 지식인’들의 말과 글을 텍스트로 삼아 그들의 왜곡된 잣대와 시각을 비판한다. 이들 미디어 지식인이 남긴 텍스트 혹은 언설 이면에는 독재시대와 냉전시대, 더 멀리로는 일제 식민지배 시대부터 내면화된 오리엔탈리즘적 신화가 내재돼 있음을 찾아낸다. 또 이들의 언설에는 오리엔탈리즘적 신화를 우리 사회에서 부활시키려는 그들의 목표와 전략이 일관되게 담겨 있음을 지적한다.
오리엔탈리즘의 덫에 걸린 지식인의 모습 분석. 미국의 네오콘, 일본의 신우익, 한국의 극우 지식인과 뉴라이트 세력으로 이어지는 우리 곁의 오리엔탈리즘의 실체.
서구 제국주의의 지배 이데올로기인 ‘오리엔탈리즘’은 유럽을 지나 미국과 일본을 거쳐 우리 사회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오리엔탈리즘적 욕망에 사로잡힌 미국이 자신만이 악의 제국들을 무너뜨릴 절대 선이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우리 사회의 오리엔탈리스트들도 자신들만이 친북·좌파·반미라는 악의 세력으로부터 한국 사회를 구해낼 수 있다고 말한다. 미국과 한국의 오리엔탈리스트들은 자신들만이 ‘인권’과 ‘자유’를 말할 자격이 있는 ‘이성’의 소유자들이며, 만약 자신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자들이 있다면 그들은 영원히 배제해야 할 광인이며 이단이라 주장한다.
미국 네오콘에 잠재된 오리엔탈리즘과 일본 신우익의 논리 속에 담겨 있는 오리엔탈리즘을 복제한 ‘우리 지식인 속의 오리엔탈리즘’은 마치 자기 증식된 기형 바이러스처럼 모질고 독하게 우리 사회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있다. 이 책은 절대이성의 소유자임을 자처하는 우리 사회의 미디어 지식인들이야말로 오히려 오리엔탈리즘의 광기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닌지 해부한다.
에드워드 사이드에 의하면 한국의 보수세력이 갖고 있는 지금의모습은 본래 우리 스스로 창조한 것이 아니라, 독재정권의 분단논리와 강대국의 냉전논리, 그리고 일본의 식민지배논리가 만들어낸 허구들의 조합 이미지이다. 사이드가 동양을 지배하고 억압하기 위해 서구가 만들어낸 편견과 왜곡의 허상을 ‘오리엔탈리즘’이라고 불렀다면, 필자는 한국의 보수세력이 이를 ‘한국적 오리엔탈리즘’으로 내재화하고 이상화한 이 허구적 현실을 ‘복제 오리엔탈리즘’이라고 명명한다.
이 책은 미국의 현대판 오리엔탈리즘 재구성을 시도하는 조지 W. 부시와 그의 네오콘 싱크탱크들의 전략과 철학을 더듬어 보고, 이어서 네오콘 싱크탱크들의 세계지배 전략인 ‘팍스 아메리카나’의 실현 과정을 집중 분석한다. 그리고 한반도에 투영된 미국의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의 실체와 오리엔탈리즘의 덫에 걸린 한국 지식인 사회의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을 살펴본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격동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우리 사회의 대립과 분열을 극복하기 위한 화합과 공존의 길은 무엇인지 모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