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러는 르네상스 독일의 대표적인 화가이다. 중세의 미술 전통에 발목이 묶여서 크게 뒤처져 있던 북유럽에 새로운 인문주의의 새벽을 선언한 것은 다름 아닌 뒤러의 예술이었다. 미술의 역사는 뒤러를 일컬어 가장 독일적인 화가라고 부르지만, 그의 아버지는 멀리 헝가리에서 태어나 서유럽의 여러 도시를 유랑하던 금세공사였다고 한다. 도시 사이의 교차무역으로 번성하던 한자 도시 뉘른베르크에 정착하여 시민권을 딴 뒤러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가업을 물려주려고 했지만, 뒤러의 재능은 화가의 길로 내달았다. 그리고 뒤러가 훗날 인문학자로 크게 이름을 떨칠 피르크하이머와 어릴 적 단짝이었다는 사실은 그가 타고난 재능을 포기하지 않고 꽃피우는 데 중요한 계기를 제공했을 것이다.
이 책은 뒤러가 그린 철갑코뿔소 판화를 통해서 그 시대의 예술과 교양 그리고 문화와 사회를 요지경처럼 들여다본다. 인도산 철갑코뿔소가 서인도 항로를 통해 아프리카 해안을 지나서 포르투갈에 도착하여 코끼리와 한판 승부를 벌이는 이야기는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집채만 한 동물들이 벌이는 신기한 볼거리가 공공장소에서 개최되었다는 사실은 오백 년 전 위대한 도전과 모험의 시대에 신대륙과 대양을 찾아나섰던 개척자들의 자연에 대한 흥미와 호기심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