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을 전후해서 인류의 역사는 큰 걸음을 떼었다. 기술과 문명이 크게 진보하고, 새로운 과학의 발명들이 잇달았다. 대도시의 시민들은 신세계의 꿈에 들떠서 흥청거렸다. 인간의 섣부른 자만심은 바벨탑을 지어올리던 고대의 저주를 까맣게 잊어버렸다. 세기말의 달콤한 타락이 도시의 밤을 취하게 했다.
그때 프란츠 마르크는 스무 살 청년이었다. 화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뮌헨 미술 아카데미에 들어간 해였다. 이듬해에는 베네치아를 여행했고, 다시 두 해 뒤에는 친구와 함께 파리에서 인상주의 화가들의 전시회를 둘러보기도 했다. 예술의 어린 꿈을 키우기 시작한 것이다.
세기말의 화가들은 너나없이 인간의 역사와 문명, 그리고 대도시의 변화된 풍경을 그리기 좋아했다.
독일에서는 역사를 뒤흔든 위인들의 근엄한 초상화가 크게 유행했다. 그러나 프란츠는 이런 데 관심이 없었다. 예술의 올바른 본질은 떠들썩하고 요란한 대도시가 아니라,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자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심을 굳힌 프란츠는 주저 없이 뮌헨을 등지고 알프스의 작은 마을 진델스도르프의 시골집을 예술의 새로운 요람으로 삼았다.
그래서 그런지 프란츠의 그림에는 동물들이 자주 등장한다. 앵무새, 원숭이, 사슴, 들개, 멧돼지들이 울창한 숲 속에서 뛰어논다. 그 가운데 프란츠가 가장 즐겨 그린 것은 들판을 서성거리는 말들이었다. 프란츠는 흰 말이나 검은 말은 한 번도 그리지 않았다. 그 대신 파랑, 빨강, 노랑의 갈기를 휘날리는 사랑스런 말들이 그가 창조한 예술의 들판을 거닐고 있다. 화가의 팔레트에서 동화 속 동물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