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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晶月) 나혜석은 1896년 수원시 장안구 신풍동에서 일명 ‘나 부잣집’ 둘째 딸로 태어나 수원 삼일여학교(현 매향여자경영정보고등학교)와 서울 진명여학교를 거쳐, 1913년 4월 오빠 나경석의 지원으로 도쿄 사립여자미술학교 입학했다. 그곳에서 오빠의 소개로 유학생 문인 최고의 시인으로 명성을 떨치던 게이오 대학의 소월(素月) 최승구를 만나, 결혼을 전제로 한 공개 연애를 했다.
그러나 최승구에게는 이미 고국에 조혼한 아내가 있었다. 1915년 아버지의 결혼 강요로 일 년 간 학교를 휴학하고 여주 공립보통학교에서 교원으로 근무했다. 이듬해인 1916년 4월 도쿄로 돌아가 서양화 고등사범과에 일학년으로 복학했지만, 첫사랑 최승구는 폐결핵이 심해져 당시 전라남도 고흥의 고흥군수로 있던 형 최승칠의 집으로 요양을 가게 된다. 보고 싶다는 최승구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 나혜석은 도쿄에서 고흥까지 찾아갔고, 나혜석이 다녀간 다음 최승구는 눈을 감았다.
1917년 7월, 최초의 여성소설 「부부」를 도쿄여자유학생친목회 기관지인 《여자계》에 발표한 것으로 추측이 되고(미발굴), 이듬해인 1918년 3월, 나혜석의 두 번째 소설이자 대표작으로, 현존하는 한국 최초의 여성 작가 소설로 꼽히는 「경희」를 《여자계》 2호에 발표했다. 이 소설은 아버지의 결혼 강요로 휴학한 채 수원과 여주에서 보낸 시절이 밑바탕이 되어 축첩 제도와 결혼 제도에 대한 비판과 한 여자로서가 아니라 사람으로서 미래를 열어 나가려는 당시 나혜석의 번뇌와 의지가 고스란히 표출된 작품이다.
1917년 오빠 나경석의 주선으로 쿄토제대 법학과 재학생인 김우영을 만나 1920년 4월 10일 서울 정동 예배당(현 정동제일교회)에서 신식으로 결혼했다. 김우영은 나혜석보다 아홉 살 연상으로 상처했고, 전처소생의 딸이 하나 있었다.
결혼 후 나혜석은 신혼여행으로 신랑 김우영을 데리고 첫사랑 최승구의 묘를 찾아가 비를 세우고 돌아왔다. 1921년 3월, 만삭의 몸으로 경성일보사 내청각에서 이틀 동안 유화 개인 전람회를 열었고, 행사는 대성황이었다. 같은 해 9월 남편 김우영이 만주 단동에 일본 외무성 관리인 부영사로 부임함에 따라 나혜석은 외교관 부인으로, 화가로, 문필가, 어머니로 활발하게 활동했다. 1922년 조선 총독부 주최 제1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 1927년까지 매회 출품 입선했다. 1927년 일본국 외무성 관리인 김우영에게 장기간 벽지 근무에 대한 포상으로 구미 여행의 기회가 주어졌고, 나혜석은 세 아이를 부산의 시모에게 맡긴 채 부부 동반으로 유럽과 미국 여행길에 올라 7월 파리에 도착, 정착했다. 남편 김우영은 베를린으로 법률 공부를 위해 떠나고, 나혜석은 10월에 파리에서 천도교 교령 최린을 만나 가까워졌다. 두 사람은 11월 20일 파리 소르본 광장 가에 있는 셀렉트 호텔에 함께 투숙했다.
1929년 귀국 후에 최린과의 스캔들이 문제가 되어 나혜석은 1930년 남편에게 일방적으로 이혼당했다. 그녀는 1929년 파리에서 돌아와 낳은 셋째 아들 건을 포함 네 자식과 생이별을 해야 했고, 이후 사회적인 냉담과 혹평이 지나쳐 화가로서 문필가로서 사회운동가로서 활동하는 데 암울한 상태에 빠졌다. 1933년 자전 장편소설 「김명애」를 써서 당시 조선일보 부국장으로 있던 이광수에게 보냈으나 발표되지 못하고 6?25 전란 중에 유실된 것으로 전해진다.
1934년, 김우영을 만나 연애하고 결혼하고 이혼하기까지의 십여 년을 솔직하게 회고하고, 여성에게만 일방적으로 희생을 강요하는 도덕과 인습을 비판하는 「이혼고백장」이라는 사상 초유의 글을 《삼천리》에 발표했다. 이어 9월에는 최린을 상대로 ‘정조유린죄’에 대한 위자료 청구 소송을 제기, 이 사건이 《조선중앙일보》와 《동아일보》에 보도되었다. 이 두 사건을 계기로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심각한 고립 상태에 빠진 나혜석은 첫사랑 최승구와 남편 김우영 그리고 돌보지 못한 네 자식에 대한 회한을 가슴에 품은 채 수덕사와 마곡사, 해인사, 다솔사를 떠돌고 안양양로원과 청운양로원을 전전하다가 1948년 행려병자로 파란 많은 생을 마감했다.
나, 가은은 서른두 살의 여자다. 나에게는 M이라는 애인이 있다. M에게는 아내와 아들이 있다. 또 나는 중학교 때부터 읽었던 소설들의 첫 문장을 기억하고, 아버지의 숨겨진 여자로 일생을 살았던 작은어머니를 기억한다. 그리고 나는 서양 최초의 여성 화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생애를 그린 평전과 멕시코 출신의 여성 화가 프라다 칼로의 생을 바탕으로 쓴 소설을 번역하고, R의 일대기를 그린 다큐멘터리의 작가로 글을 쓴다. 주인공 가은은 사진작가이자 연인인 M의 소개로 다큐멘터리 감독인 박윤식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의 열정에 이끌려 R의 생애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물론 그것은 박윤식 때문에도 M 때문에도 아니다. 어쩌면 그것은 R이라는 이름을 가진 어떤 인간 속에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한 사람이, 거울에 비친 자신을 자꾸만 바라보게 되는 심정인지 모른다. 그리고 R의 삶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면 갈수록 R이라는 인물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나는 그녀의 뜨거운 예술적 열정과, 거침없는 사랑과, 시대적 조건의 제약에도 불구하고 여성으로 예술가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용기에 매료된다. 하지만 동시에 결과가 뻔히 내다보이는 상황에서도 무모하게 불속으로 뛰어드는 그녀의 기승스러움에 견딜 수 없는 안타까움과 고통을 느낀다.
나는 냉정하게 분석하고 판단하고 차가운 정신으로 기록하는 관찰자로 머물지 못하고 그녀의 생 속으로 자꾸만 끌려들어가는 자신을 부정하려 애쓴다. 벗어나고자 한다. 그러나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는 사이, M을 버려두고 스페인으로 떠났던 그의 아내가 되돌아오고, 나는 M을 잊어버리지도 간직하지도 못한 채 자꾸만 길을 떠난다. 도쿄로, 파리로, 수덕사로, 수원으로 R을 좇아 걷는다. 그런 나에게 이유항이 다가온다. 물고기를 잡아다 주는 남자 이유항은 M과는 전혀 다르다. 그는 젊고 그늘지지 않았고 생의 어떤 비애감으로 짓눌리지 않은, 그래서 응석을 부릴 줄도 아는 자신감 있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가 적극적일수록 나는 자꾸만 M의 기억으로 돌아간다. 혹은 R에게로 돌아간다. 그 끊임없는 오고 감의 여정이 마침내 끝나는 순간, 나는 R이 아닌 자신의 초상이 완성되어 있음을 발견한다. 내가 끝까지 사랑한 한 사람은 M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R이 불우하게 생을 마감했던 그 지점에서, 나는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커다란 한 걸음을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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